디파티드: 엇갈린 정체성, 권력을 향한 욕망, 그리고 누구도 피할 수 없는 잔혹한 운명

 마틴 스코세이지의 <디파티드>는 경찰과 범죄 조직, 두 거대한 세계의 심장부에 서로의 ‘쥐(rat)’를 심어놓는다는 강렬한 설정 하나만으로도 이미傑作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있는 영화다. 이 작품은 홍콩 영화 <무간도>를 원작으로 하지만, 스코세이지는 배경을 보스턴으로 옮겨와 자신만의 스타일, 즉 아일랜드계 미국인 사회의 끈끈한 유대와 부패, 그리고 폭력의 연대기를 녹여내며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범죄 비극을 창조해냈다. 경찰의 스파이가 되어 범죄 조직에 잠입한 빌리 코스티건(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과, 범죄 조직의 스파이가 되어 경찰에 잠입한 콜린 설리번(맷 데이먼). 영화는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두 남자의 삶을 교차시키며, 관객의 심장을 쥐어짜는 서스펜스와 함께 ‘진정한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실존적인 질문을 던진다. <디파티드>는 단순한 스파이 영화가 아니라, 거짓된 삶이 인간의 영혼을 어떻게 좀먹고 파괴하는지에 대한 냉혹한 보고서다. 이 글은 빌리와 콜린의 뒤바뀐 ‘정체성’이 어떻게 그들을 벼랑 끝으로 내모는지, 절대적인 악의 ‘권력’을 상징하는 프랭크 코스텔로가 두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그리고 이 모든 거짓과 불신이 결국 어떤 필연적인 ‘운명’의 비극으로 귀결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경찰이 된 갱, 갱이 된 경찰: 빌리와 콜린, 두 남자의 위태로운 정체성 줄타기

<디파티드>의 서사는 완벽한 대칭 구조를 이룬다. 경찰 학교의 우등생이었지만, 범죄자 집안이라는 배경 때문에 특별 임무에 차출되어 갱스터가 되어야만 하는 빌리. 그리고 보스턴 최대 범죄 조직의 보스 프랭크 코스텔로(잭 니콜슨)의 비호 아래 자라, 그의 스파이가 되기 위해 경찰이 된 콜린.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이 속한 세계를 배신하고, 적의 세계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동일한 운명에 처해있다. 하지만 그들이 겪는 내면의 고통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 빌리의 여정은 지옥 그 자체다. 그는 자신의 진짜 신분을 아는 단 두 명의 상사를 제외하고는 모두에게 범죄자로 취급받으며, 언제 정체가 발각될지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과 편집증에 시달린다. 그는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행사해야 하고, 진짜 범죄자들보다 더 독한 모습을 연기해야 한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신경쇠약 직전까지 내몰리는 빌리의 위태로운 심리를, 떨리는 손과 공허한 눈빛, 그리고 통제되지 않는 분노를 통해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그의 고통은 관객에게 그대로 전이되어, 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게 만든다.

반면, 콜린의 삶은 겉보기에는 탄탄대로다. 그는 경찰 내에서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하고, 아름다운 연인과 함께 멋진 아파트에서 살아간다. 그는 경찰로서의 성공과 범죄 조직의 정보원이라는 두 개의 정체성 사이에서 교묘하게 줄타기를 하며, 양쪽의 이점을 모두 누리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의 내면 역시 서서히 무너져 내리고 있다. 그는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이 거짓 위에 세워진 성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며, 프랭크 코스텔로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 ‘진짜 자기 자신’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에 시달린다. 맷 데이먼은 자신감 넘치고 유능한 경찰의 모습과, 자신의 뿌리에 대한 불안감과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나약한 남자의 모습을 오가며 콜린이라는 캐릭터에 입체감을 부여한다.

영화는 이 두 남자의 삶을 교차 편집하며, 그들이 공유하는 고독과 불안을 극대화한다. 그들은 서로의 존재를 모른 채, 각자의 세계에 숨어있는 ‘쥐’를 찾아내라는 똑같은 임무를 부여받는다. 즉, 자기 자신과 같은 처지에 있는 또 다른 자신을 쫓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정신과 의사 매돌린(베라 파미가)은 이 두 남자를 연결하는 유일한 인물로, 그녀와의 관계를 통해 두 사람의 내면은 더욱 선명하게 대비된다. 빌리는 그녀에게서 유일한 위안을 얻으려 하고, 콜린은 그녀를 통해 자신의 거짓된 삶을 완성하려 한다. 결국 이 위태로운 정체성 줄타기는, 두 사람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는 순간 폭발하며,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악의 아비, 프랭크 코스텔로의 그림자: 권력과 생존을 위해 아버지를 선택한 아들들

<디파티드>의 세계를 지배하는 절대적인 힘이자, 두 주인공의 삶을 송두리째 흔드는 인물은 바로 아일랜드계 마피아 보스 프랭크 코스텔로다. 잭 니콜슨이 악마적인 카리스마로 연기한 이 캐릭터는 단순한 악당을 넘어, 부패하고 폭력적인 세상의 질서를 상징하는 거대한 존재다. 그는 “네가 총을 가졌을 땐, 경찰도 총을 든 범죄자일 뿐이다”라고 말하며 법과 도덕의 경계를 비웃고, 예측 불가능한 폭력과 교활한 지략으로 자신의 제국을 통치한다. 그는 빌리와 콜린 모두에게 일종의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지만, 그 방식은 전혀 다르다.

콜린에게 프랭크는 자신을 빈민가 소년에서 성공한 경찰로 만들어준 후원자이자, 결코 거역할 수 없는 주인이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프랭크의 돈을 받고 자랐으며, 그의 충실한 ‘아들’이 되어 경찰 조직의 정보를 빼내 줌으로써 그에게 보답한다. 그들의 관계는 비즈니스처럼 보이지만, 그 기저에는 왜곡된 부자 관계와도 같은 심리적 종속이 깔려있다. 콜린은 프랭크의 권력을 동경하고 그의 일부가 되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그의 그림자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 하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그는 프랭크를 아버지처럼 따르지만, 그 아버지는 그의 영혼을 갉아먹는 악마다.

한편, 빌리가 프랭크의 조직에 잠입했을 때, 그는 프랭크에게서 기묘한 종류의 인정을 받게 된다. 프랭크는 빌리의 배짱과 능력을 높이 사며, 그를 자신의 곁에 두고 신임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빌리는 자신의 진짜 아버지와도 같았던 경찰 상사 퀴넌(마틴 쉰)에게서는 받지 못했던 인정을, 적의 수장인 프랭크에게서 받게 되는 것이다. 프랭크는 빌리의 범죄자 집안 배경을 꿰뚫어 보고, “네 아버지는 널 자랑스러워했을 거다”라고 말하며 그의 내면을 흔든다. 이는 경찰 세계에도, 범죄 세계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빌리의 정체성 혼란을 더욱 가중시킨다. 그는 프랭크를 증오하면서도, 그의 압도적인 카리스마와 권력에 매료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두 주인공은 모두 각자의 ‘아버지’를 선택하고, 그 선택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 콜린은 자신의 생존과 성공을 위해 진짜 아버지와도 같았던 프랭크를 배신하고, 빌리는 자신의 신념과 의리를 지키기 위해 경찰로서의 임무를 끝까지 수행한다. 스코세이지는 이 뒤틀린 부자 관계를 통해, 한 개인의 정체성과 운명이 어떻게 더 큰 권력의 그림자 아래에서 형성되고 또 파괴되는지를 보여주며, 영화에 깊이 있는 비극성을 더한다.

아무도 믿을 수 없는 세계의 필연적 비극, 엇갈린 운명이 낳은 피의 결말

<디파티드>의 세계는 불신으로 가득 차 있다. 경찰은 경찰을 믿지 못하고, 갱은 갱을 믿지 못한다.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인지 알 수 없는 혼돈 속에서, 모든 인물들은 살아남기 위해 서로를 속고 속인다. 이러한 불신의 연쇄는 결국 그 누구도 승자가 될 수 없는, 필연적인 비극으로 치닫는다. 영화의 마지막 30분은 배신과 죽음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야말로 피의 향연이다.

빌리는 마침내 콜린이 프랭크의 스파이임을 밝혀내고, 자신의 정체를 증명하기 위해 그를 체포하려 한다.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이 보이는 바로 그 순간,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그는 또 다른 경찰 스파이에게 허무하게 총을 맞아 죽는다. 관객이 주인공이라고 믿었던 인물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며, 이 세계에 어떤 희망이나 권선징악도 존재하지 않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이후, 빌리를 죽인 스파이는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 또 다른 동료를 죽이고, 이 모든 것을 덮으려는 콜린에 의해 살해당한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처럼 보였던 콜린 역시, 자신의 집으로 돌아온 순간, 과거 자신이 배신했던 동료 경찰 디그넘(마크 월버그)의 총에 맞아 최후를 맞이한다. 이 마지막 죽음은 마치 모든 것을 지켜본 신의 심판처럼, 혹은 이 비정한 세계의 인과응보처럼 다가온다. 영화의 가장 마지막 장면은, 콜린의 아파트 발코니 난간 위를 기어가는 한 마리의 ‘쥐(rat)’를 비춘다. 이 노골적인 상징은, 결국 이 모든 비극이 서로의 세계에 숨어든 ‘쥐’들 때문에 벌어졌으며, 거짓과 배신의 끝에는 죽음 외에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영화의 냉소적인 주제를 다시 한번 확인시킨다.

스코세이지 감독은 이 피비린내 나는 결말을 통해, 정체성을 잃어버린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지옥도를 가차 없이 그려낸다. 그 누구도 자신의 진짜 모습을 찾지 못했으며, 그들이 추구했던 부와 명예, 그리고 사랑마저도 모두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렸다. 엇갈린 운명 속에 놓였던 두 남자의 이야기는, 결국 서로를 파멸시키는 비극으로 끝을 맺으며, 관객에게 신뢰가 무너진 사회가 어떻게 스스로를 파괴하는지에 대한 서늘한 경고를 남긴다.

결론

<디파티드>는 마틴 스코세이지의 노련한 연출력과 할리우드 최고 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 시너지가 완벽하게 결합된, 21세기 범죄 스릴러의 가장 빛나는 성취 중 하나다. 이 영화는 쉴 새 없이 관객을 몰아붙이는 서스펜스와 예측 불가능한 전개를 통해 장르적 쾌감을 극대화하는 동시에, 정체성의 혼란이라는 보편적인 주제를 통해 깊이 있는 공감대를 형성한다. 거짓된 삶 속에서 서서히 영혼을 잃어가는 두 남자의 비극은,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를 넘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우리에게 되묻게 만든다. 마지막 장면의 총성과 함께 남는 깊은 허무함은, 스코세이지가 그려낸 이 지옥 같은 세계가 스크린 너머 우리의 현실과 그리 멀지 않음을 암시하는 듯하여 더욱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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