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멘데스 감독의 <1917>은 전쟁 영화 장르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경이롭고도 처절한 영화적 체험이다. 이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어느 날, 두 명의 영국 병사가 적진을 가로질러 아군의 다른 부대에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하는, 지극히 단순한 서사를 따른다. 하지만 영화는 이 단순한 이야기를 ‘원 컨티뉴어스 숏(one continuous shot)’, 즉 편집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전체가 하나의 장면처럼 이어지는 촬영 기법으로 담아내며, 관객을 스크린 속 안전한 관찰자가 아닌, 주인공 스코필드(조지 맥케이)의 바로 등 뒤에서 함께 뛰고, 숨고, 절망하는 동행자로 만들어버린다. <1917>의 위대함은 단순히 기술적 과시에 있지 않다. 오히려 이 집요한 형식미는 ‘시간’이라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는 병사의 절박함, 언제 어디서 죽음이 덮칠지 모르는 전장의 공포,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이겨내게 하는 ‘임무’의 숭고함을 관객의 온몸으로 느끼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장치가 된다. 이 글은 <1917>이 어떻게 편집을 거부한 카메라를 통해 실시간의 공포와 ‘시간’의 압박감을 극대화하는지, 스코필드의 필사적인 ‘여정’이 지옥도를 통과하며 어떻게 한 인간의 내면적 변화를 이끌어내는지, 그리고 이름 없는 병사들의 숭고한 ‘희생’이 전쟁의 무의미함 속에서 어떻게 역설적인 인간애를 피워내는 지를 깊이 있게 탐구하고자 한다.
편집을 거부한 카메라, 실시간으로 체험하는 전쟁의 시간
전쟁 영화는 전통적으로 수많은 컷과 다양한 앵글의 교차 편집을 통해 전장의 혼란과 규모를 보여주는 데 주력해왔다. 하지만 샘 멘데스와 로저 디킨스 촬영감독은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그들은 영화 전체를 거의 실시간으로, 끊어지지 않는 하나의 숏처럼 보이게 만드는 방식을 통해 관객의 시선을 오직 두 병사의 동선에 고정시킨다. 이 선택이 가져오는 효과는 가히 혁명적이다. 우리는 다른 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없으며, 다음 모퉁이를 돌면 무엇이 나타날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 편집을 통해 안전하게 시공간을 건너뛸 수 있는 심리적 안도감은 원천적으로 차단된다. 관객은 주인공과 함께 숨을 죽이고, 함께 참호를 기어가며, 함께 총알이 빗발치는 전장을 달려야만 한다.
이러한 형식은 영화의 가장 중요한 적, 바로 ‘시간’을 스크린 위에 생생하게 구현한다. 스코필드와 블레이크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순히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새벽까지’, 즉 정해진 시간 안에 전달하여 1,600명의 목숨을 구하는 것이다. 멈추지 않고 흘러가는 카메라는 멈출 수 없는 시간의 흐름 그 자체를 상징한다. 그들의 모든 발걸음, 모든 숨결은 시간과의 필사적인 사투다. 영화 속에서 인물들이 잠시 휴식을 취하거나 망설이는 순간, 관객은 자신도 모르게 초조함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시간의 압박감은 기존 전쟁 영화들이 보여주던 스펙터클한 전투 장면과는 다른 차원의, 내밀하고도 심리적인 서스펜스를 구축한다. 우리는 거대한 전쟁의 전체 그림이 아니라, 그 속에서 시간을 다투는 한 개인의 절박함에 완벽하게 몰입하게 되는 것이다.
로저 디킨스의 카메라는 이 몰입감을 극대화하는 경이로운 순간들을 창조해낸다. 독일군이 버리고 간 참호 속을 탐색할 때의 폐소공포증적인 긴장감, 조명탄이 터지며 폐허가 된 도시의 실루엣이 드러나는 악몽 같은 아름다움, 강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다 벚꽃이 흩날리는 숲에 도달하는 찰나의 평화까지. 이 모든 장면은 편집의 개입 없이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관객이 느끼는 감정의 흐름을 단 한 순간도 끊지 않는다. 결국 <1917>의 원테이크 기법은 단순한 기술적 자랑이 아니다. 그것은 전쟁이라는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이 느끼는 시간의 흐름과 공간의 공포를 가장 직접적으로 체험하게 함으로써, ‘전쟁은 끔찍하다’는 메시지를 머리가 아닌 심장으로 느끼게 만드는 가장 정직하고도 강력한 영화적 언어다.
지옥도를 가로지르는 필사의 여정, 폐허 속에서 발견한 찰나의 희망
<1917>은 주인공 스코필드가 동료 블레이크와 함께 무인지대(No Man's Land)를 가로지르면서 본격적인 여정을 시작한다. 이 여정은 단순히 A지점에서 B지점으로 이동하는 물리적인 길을 넘어, 한 인간이 전쟁의 참상을 온몸으로 겪으며 변해가는 내면의 경로를 상징한다. 영화 초반의 스코필드는 전쟁에 다소 냉소적이고 회의적인 인물이다. 그는 훈장을 받았지만 그것을 별것 아닌 듯 말하고, 위험한 임무를 맡게 된 것에 불평하며,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반면, 그의 동료 블레이크는 자신의 형이 속한 부대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가득 찬, 순수하고 열정적인 청년이다.
이들의 여정은 마치 단테의 ‘신곡’처럼, 전쟁이 만들어낸 여러 단계의 지옥도를 통과하는 과정으로 그려진다. 썩은 말과 시체들이 널브러져 있는 진흙탕 참호, 거대한 쥐들이 들끓는 어두운 벙커, 그리고 독일군의 부비트랩에 의해 동료 블레이크가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에 이르러, 스코필드의 여정은 홀로 감당해야 할 무거운 십자가가 된다. 동료의 죽음은 그에게 엄청난 충격과 슬픔을 안기지만, 동시에 임무의 무게를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게 만드는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생존만을 위해 움직이지 않는다. 블레이크의 유품을 챙기고, 그의 몫까지 해내겠다는 결심을 다지며, 그는 한 단계 성숙한 인간으로 나아간다.
스코필드가 홀로 마주하는 폐허가 된 도시 에쿠스트의 야경은 이 영화의 가장 비현실적이고도 아름다운 장면이다. 조명탄이 밤하늘을 밝힐 때마다 드러나는 무너진 건물의 거대한 그림자는, 마치 전쟁이 만들어낸 거대한 괴물처럼 도시를 배회한다. 이 지옥 같은 풍경 속에서 스코필드는 한 프랑스 여성과 그녀가 돌보는 아기를 우연히 만나 잠시나마 인간적인 교감을 나눈다. 자신의 식량을 나누어주고, 아기를 보며 잠시 미소 짓는 이 짧은 순간은, 모든 것이 파괴된 폐허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인간애와 희망의 불씨를 상징한다. 또한, 새벽녘 숲속에서 한 무리의 병사들이 부르는 ‘I Am a Poor Wayfaring Stranger’를 듣는 장면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든 그의 지친 영혼에 잠시의 위안과 안식을 선사한다. 이처럼 영화는 극한의 절망 속에서 역설적으로 피어나는 찰나의 아름다움과 인간성을 포착함으로써, 스코필드의 여정이 단순히 임무 완수를 위한 길이 아니라, 비인간적인 환경 속에서 자신의 인간성을 끝까지 지켜내려는 숭고한 투쟁의 과정임을 보여준다.
'살아 돌아오라'는 마지막 임무, 이름 없는 병사들의 숭고한 희생
스코필드가 마침내 데본셔 연대의 참호에 도달했을 때, 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공격 개시를 불과 몇 분 앞둔 상황, 통신은 두절되었고 대령을 만날 길은 요원하다. 여기서 스코필드는 영화에서 가장 강렬하고 상징적인 행동을 감행한다. 그는 참호 밖으로 뛰쳐나와, 이제 막 돌격을 시작한 수백 명의 아군 병사들을 가로질러 지휘부를 향해 필사적으로 달린다. 그의 옆으로 포탄이 터지고 병사들이 쓰러져 나가지만, 그는 오직 공격을 멈춰야 한다는 단 하나의 목표를 향해 달린다. 이 장면은 한 개인의 의지가 어떻게 거대한 전쟁 기계의 무자비한 관성을 거스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비장하고도 감동적인 순간이다.
그가 마침내 매켄지 대령을 만나 공격 중지 명령을 전달했을 때, 대령은 “일주일 후면 이 명령을 내린 장군은 또 다른 명령을 내릴 거요. 전쟁이 끝나는 유일한 방법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죽는 것뿐이지”라며 냉소적으로 말한다. 그의 말은 전쟁의 본질적인 허무함과 무의미함을 드러낸다. 스코필드의 영웅적인 행동은 1,600명의 목숨을 구했지만, 전쟁 자체를 멈추지는 못한다. 하지만 매켄지 대령은 이어서 묻는다. "희망은 위험한 거야." 이 말에 대한 대답처럼, 영화는 스코필드가 블레이크의 형을 찾아 동생의 죽음을 알리고 유품을 전하는 장면으로 이동한다. 이 장면에서 임무의 진정한 의미가 드러난다. 그것은 단순히 1,600명이라는 숫자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블레이크라는 한 사람의 이름,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마지막을 기억하고 전하는 것이었다.
영화의 마지막, 모든 임무를 마친 스코필드는 나무에 기대어 가족사진을 꺼내 본다. 그의 뒤에는 ‘살아서 집으로 돌아오라’는 메시지가 새겨져 있다. 이것이야말로 전쟁터의 모든 이름 없는 병사들이 품고 있는 가장 본질적이고도 마지막 임무일 것이다. 그의 여정은 끝났지만, 전쟁은 계속된다. 그의 숭고한 희생은 거대한 전쟁사 속에서 아주 작은 각주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1917>은 바로 그 이름 없는 개인들의 작은 희생들이 모여 역사를 이루고, 비정한 전쟁 속에서도 인간성을 지켜내는 가장 위대한 힘임을 이야기한다. 스코필드가 지친 눈을 감는 마지막 장면은, 그가 잠시 얻은 평화가 얼마나 위태롭고 소중한 것인지를 보여주며, 전쟁의 참상에 대한 깊고 무거운 여운을 남긴다.
결론
<1917>은 전쟁 영화의 문법을 새로 쓴 기술적 성취이자, 인간의 용기와 희생에 대한 깊은 존경을 담은 휴먼 드라마다. 샘 멘데스 감독은 원테이크라는 극단적인 형식을 통해, 관객을 1차 세계대전의 참호 한복판으로 던져 넣는 데 성공했다. 이 영화는 거대한 영웅 서사나 정치적 메시지를 앞세우는 대신, 오직 한 병사의 시선을 끈질기게 따라가며 전쟁의 비인간성과 그 속에서 피어나는 찰나의 인간애를 생생하게 대비시킨다. 스코필드의 숨 가쁜 여정을 함께하며, 우리는 시간의 무자비함과 죽음의 공포,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무를 완수하려는 인간 의지의 숭고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1917>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 하나의 완벽한 ‘체험’을 선사하는 작품이며, 전쟁의 무의미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이토록 절실하게 느끼게 한 영화는 드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