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을 수 없는 사랑'에서 '느낄 수 있는 연대'로
음악은 귀로 듣는 것 같지만, 진짜 음악은 마음으로 들린다. 〈코다〉는 바로 이 사실을 가장 단순하고도 아름다운 방식으로 일깨우는 영화다. 청각장애인 가족 속 유일한 청인(聽人)으로 태어난 소녀 루비의 성장 이야기는, 단순한 ‘장애’라는 주제를 넘어 우리가 어떻게 서로를 이해하고 사랑하며 지지할 수 있는지를 조용하고도 단단하게 말해준다. 그리고 이 영화는 단지 이야기의 감동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 중심의 문화 속에서 주변화되어 온 청각장애인 커뮤니티의 현실까지 세심하게 비춘다. 이제부터 이 영화가 들려주는 세 가지 화음을 따라가며,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 서로의 ‘침묵’을 들을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가족과 침묵: 청인 소녀 루비와 청각장애인 가족의 경계에서
〈코다〉는 “Children of Deaf Adults”의 약자인 CODA를 제목으로 삼고 있다. 이 자체가 이 영화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명확히 알려준다. 주인공 루비는 고등학생이자, 어부 집안의 딸이자, 유일한 청인이다. 그녀는 아버지 프랭크, 어머니 재키, 오빠 리오의 ‘귀’ 역할을 한다. 일상적인 시장 거래에서부터 병원 진료, 방송 인터뷰까지, 루비는 언제나 가족과 세상 사이를 잇는 통역자이다. 그리고 그 역할은 단지 기술적인 통역만이 아니다. 그녀는 가족이 이해받을 수 있도록 사회의 언어를 해석하고, 가족이 세상과 소통할 수 있도록 감정을 번역하는 존재다. 동시에 그녀는 성장 중인 한 소녀로서 자신의 인생과 미래에 대한 꿈을 갖고 있다.
영화는 이 두 가지 위치 사이에서 루비가 느끼는 혼란과 무게를 매우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그녀는 학교에서 음악을 배우며 노래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 음악은 부모에게 들리지 않는다. 가족은 루비의 꿈을 응원하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녀 없이는 생업이 불가능하다. 루비가 자아실현을 선택하면, 가족은 고립된다. 가족을 위해 희생하면, 자신의 삶은 갇힌다. 이 양자택일의 구조는 극단적으로 단순해 보이지만, 영화는 그 안의 복잡한 감정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가족이 딸의 노래를 듣지 못한다는 사실은 루비에게 상처이고, 동시에 죄책감이다.
특히 인상 깊은 장면은 루비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 관객의 청각이 끊기고, 카메라는 루비의 부모 시점에서 세상을 보여주는 순간이다. 관객은 루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오히려 그 침묵 속에서 감정은 증폭된다. 눈빛, 손짓, 관객들의 표정, 미세한 공기의 떨림까지 — 가족의 사랑은 소리 없이 더 깊이 전해진다. 이 장면은 〈코다〉의 미덕을 집약한다. 영화는 ‘청각장애’를 극복의 대상이 아닌, 그 자체로 고유한 삶의 방식으로 다룬다. 그래서 루비의 가족은 동정의 대상이 아니라, 관객이 공감할 수 있는 평범하고 특별한 존재로 살아난다.
음악과 자아실현: 침묵의 세상에서 울려 퍼지는 목소리
루비의 진짜 목소리는 노래에 있다. 그녀는 소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고,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고자 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녀의 목소리는 가족에게 들리지 않는다. 이 아이러니는 영화의 중심 갈등이자, 동시에 가장 아름다운 해소의 순간을 만들어낸다. 루비가 보스턴 음악학교의 오디션을 준비하는 과정은 단순한 재능의 성장기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증명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그녀가 만난 음악 교사 베르나르도는 루비의 잠재력을 인정하고 밀어붙이지만, 루비는 늘 망설인다. 가정과 꿈 사이에서 흔들리는 그녀는 이 오디션을 통해 처음으로 진짜 자아를 마주한다. 그리고 그 자아는 단지 가창력이나 음정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삶의 경험으로부터 나온다. 영화는 이 과정을 세심하게 따라가며, 음악이라는 도구가 개인의 성장과 해방을 어떻게 가능케 하는지를 보여준다.
오디션 당일, 루비는 마지막으로 무대에 올라 가족이 지켜보는 가운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녀는 수화를 함께 사용한다. 이 순간, 그녀의 노래는 더 이상 혼자만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가족과 함께 부르는 노래이며, 침묵과 소리가 하나 되는 순간이다. 이 장면은 단지 감동적일 뿐만 아니라, 영화가 품고 있는 윤리와 미학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코다〉는 '장애'를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그 장애를 포용하고 재해석함으로써 진정한 소통의 가능성을 제시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음악이 있다.
다양성과 진정성: 할리우드 시스템 안에서의 조용한 혁명
〈코다〉는 2021년 선댄스영화제에서 심사위원상, 감독상, 관객상, 앙상블상 등 주요 4관왕을 석권했다. 이후 애플TV+가 역대 최고 금액으로 판권을 구입하면서 더욱 화제를 모았고,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작품상, 남우조연상(트로이 코처), 각색상까지 수상하며 전 세계에 충격과 감동을 안겼다. 이 모든 수상과 호평은 단지 작품성 때문만이 아니다. 이 영화가 가진 정치적, 문화적 의미 역시 함께 작용한 결과다.
우선 이 영화는 할리우드 주류 시스템에서 청각장애인 배우가 중심 서사를 이끌고 간 첫 사례 중 하나다. 마리 매틀린은 오스카상을 받은 적 있는 유일한 청각장애인 배우이며, 트로이 코처는 아카데미 역사상 첫 남성 청각장애인 수상자다. 이 두 배우가 그려내는 부모의 모습은 전형적이지 않고, 진짜 살아 있는 사람처럼 느껴진다. 감독 션 헤이더는 청각장애 문화를 리서치하는 데 수 년을 들였고, 실제 수화 통역사들과 협업하며 현실성과 진정성을 지켜냈다.
또한 〈코다〉는 OTT 플랫폼 영화로서는 최초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한 영화다. 이는 전통적 극장 개봉작이 아닌, 스트리밍 영화가 주류 인정을 받은 첫 신호탄이자, 콘텐츠 소비의 지형이 변화했음을 상징하는 사건이었다. 그 중심에 한 청인의 성장담과 청각장애인 가족의 이야기가 있었다는 것은, 지금 영화계가 어디를 향해 가고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증거다.
이 영화는 거창한 메시지를 앞세우지 않는다. 다만 그 안에 담긴 삶의 리듬과 시선이 너무도 섬세하고 진실되기에, 관객은 저절로 감동한다. 이것이야말로 ‘진정성’이라는 미덕의 힘이다.
당신의 사랑은 지금 어떤 소리로 울리고 있나요?
〈코다〉는 큰 소리를 내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조용히 다가와, 끝없이 울린다. 이 영화가 말하는 것은 단지 ‘들리는 것’과 ‘들리지 않는 것’의 차이가 아니다. 그것은 '진심이 닿는가', '서로를 이해하려 하는가'의 문제다. 가족의 부재를 그리지 않고도 가족의 의미를 전하고, 청각장애인을 고통의 존재로 소비하지 않고도 그들의 존재를 당당히 보여준다. 이것이 바로 〈코다〉가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영화인 이유다.
음악은 들리는 것이 아니라, ‘느껴지는’ 것이다. 그리고 가족도, 사랑도, 꿈도 마찬가지다. 귀를 닫고도, 마음으로 들을 수 있다면, 그 모든 것은 당신 안에서 울릴 수 있다. 당신의 삶 속에도, 침묵 속의 사랑이 있다면, 이 영화는 분명히 당신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