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탐욕의 세계에서 이름을 되찾고, 기억으로 서로를 구원하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단순한 애니메이션이 아니라, 스크린 위에 펼쳐지는 하나의 거대하고도 정교한 신화다. 이 작품은 이사를 가던 중 길을 잃고 신들의 세계로 들어서게 된 평범한 소녀 치히로의 모험을 그린다. 돼지로 변해버린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치히로는 마녀 유바바가 운영하는 온천장 ‘아부라야’에서 ‘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어 일하게 된다. 영화는 이 기묘하고 아름다운 세계 속에서 치히로가 겪는 수많은 만남과 시련을 통해, 한 아이의 경이로운 성장기를 그려내는 동시에 현대 사회에 대한 날카롭고도 깊이 있는 비판을 담아낸다. <센과 치히로>가 세대를 초월하여 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이유는, 일본의 전통 신화와 설화를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세계관 속에, 정체성, 탐욕, 환경, 그리고 노동의 가치라는 지극히 보편적인 주제를 완벽하게 녹여냈기 때문이다. 이 글은 아부라야라는 공간이 어떻게 현대 사회의 ‘탐욕’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지, 주인공 치히로가 자신의 ‘이름’을 되찾는 과정이 어떻게 한 인간의 위대한 성장 서사가 되는지, 그리고 하쿠와의 관계를 통해 잊혀진 ‘기억’이 어떻게 서로를 ‘구원’하는 가장 순수한 힘이 되는지를 분석하고자 한다.

신들의 온천에 비친 인간 세계의 탐욕, 유바바와 가오나시가 보여주는 기괴한 자본주의

치히로가 당도한 신들의 세계는 목가적이고 신비로운 공간이 아니다. 그 중심에 있는 온천장 ‘아부라야’는 철저한 계급과 노동 착취, 그리고 황금만능주의가 지배하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기괴한 축소판이다. 이곳의 지배자인 마녀 유바바는 커다란 머리와 탐욕스러운 얼굴을 한, 자본가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녀는 손님들에게는 극진한 서비스를 제공하지만, 자신의 직원들에게는 가혹한 노동을 강요하고 그들의 본질(이름)을 빼앗아 지배한다. 아부라야에서 일하지 않는 자는 동물로 변해버린다는 규칙은, 노동하지 않으면 존재 가치를 잃어버리는 현대 사회의 비정한 논리를 그대로 반영한다.

이러한 자본주의적 탐욕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캐릭터는 바로 ‘가오나시’다. 처음 등장했을 때, 가오나시는 정체도, 목소리도 없이 그저 주변을 맴도는 소외된 존재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아부라야의 직원들이 사금에 열광하는 모습을 본 뒤, 가짜 금을 만들어내기 시작하면서 그는 점차 끔찍한 괴물로 변모한다. 직원들은 그가 내놓는 금을 얻기 위해 온갖 아첨을 떨며 음식을 바치고, 가오나시는 그 음식과 함께 직원들까지 삼켜버리며 거대하게 몸집을 불려나간다. 그의 끝없는 식탐과 소비욕은, 물질에 대한 인간의 맹목적인 욕망이 어떻게 괴물을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주는 강력한 알레고리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지지 않는 그의 공허함은, 현대 소비 사회의 본질적인 허무함을 상징한다. 치히로만이 그의 금을 거부하고, 그를 진정한 손님으로 대하며, 그에게 쓴 경단을 먹여 그동안 삼켰던 모든 오물(탐욕)을 토해내게 만든다. 이는 진정한 관계와 소통만이 탐욕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는 영화의 중요한 메시지를 담고 있다.

또한, 온갖 오물과 쓰레기를 뒤집어쓴 채 온천을 찾아온 ‘오물신’(사실은 강의 신)의 에피소드는 환경 파괴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이다. 직원들이 모두 기피하는 손님을, 치히로는 꿋꿋하게 맞이하여 그의 몸에 박힌 거대한 쓰레기(자전거, 폐타이어 등)를 뽑아낸다. 그러자 그는 본래의 맑고 장엄한 강의 신의 모습을 되찾고, 감사의 선물로 치히로에게 신비한 경단을 남기고 떠난다. 이는 인간의 이기심과 탐욕이 어떻게 신성한 자연을 더럽히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순수한 마음과 헌신적인 노력이 오염된 자연을 정화하고 치유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한다. 이처럼 미야자키 하야오는 아부라야라는 환상적인 공간을 통해,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의 어두운 단면들을 날카롭지만 따뜻한 시선으로 비판한다.

이름을 빼앗긴 소녀, 센에서 치히로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한 소녀의 위대한 성장 서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원제는 ‘센과 치히로의 신비한 실종’이다. 이 제목은 영화의 핵심 주제가 바로 ‘이름’과 ‘정체성’의 문제임을 명확히 보여준다. 유바바는 아부라야에서 일하는 이들의 본명을 빼앗고 새로운 이름을 부여함으로써 그들을 지배한다. 주인공 ‘치히로’ 역시 유바바에게 이름을 빼앗기고 ‘센’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된다. 하쿠는 그녀에게 “네 진짜 이름을 잊어버리면, 원래 세계로 돌아갈 길을 찾지 못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여기서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한 사람의 과거와 본질, 즉 정체성 그 자체를 상징한다. 이름을 잃는 것은 곧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영화 초반의 치히로는 무기력하고 겁 많은 아이다. 그녀는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으로 부모님 뒤에 숨고, 힘든 일이 닥치면 주저앉아 울기만 한다. 하지만 부모님이 돼지로 변하고 홀로 남겨진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그녀는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부모님을 구하기 위해 변화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아부라야에서 가장 힘들고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으며, 처음에는 자신을 무시하던 동료들에게 점차 인정을 받는다. 그녀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상황에 끌려가는 아이가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주체적인 존재로 성장한다. 가오나시의 폭주를 잠재우고, 강의 신을 정화하며, 하쿠를 구하기 위해 위험한 여정을 떠나는 ‘센’의 모습은, 처음의 ‘치히로’와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인다.

이러한 성장의 정점은 그녀가 마침내 자신의 본명 ‘치히로’의 힘을 깨닫는 순간에 있다. 그녀는 하쿠를 구하기 위해 마녀 제니바를 찾아가는 길 위에서, 친구들의 도움과 자신의 노력을 통해 얻은 용기와 지혜로 어려움을 헤쳐나간다. 이 과정을 통해 ‘센’으로서의 경험은 ‘치히로’의 정체성을 더욱 단단하게 만드는 자양분이 된다. 영화의 마지막, 유바바가 내는 마지막 시험, 즉 수많은 돼지들 속에서 자신의 부모님을 찾아내야 하는 시험에서 그녀는 “이곳엔 우리 엄마 아빠가 없어요”라고 당당하게 외친다. 이는 그녀가 더 이상 겉모습에 현혹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있는 지혜를 얻었음을 의미한다. 그녀는 ‘센’으로서의 노동과 경험을 통해, 두렵고 나약했던 과거의 자신을 극복하고, 자신의 ‘이름’과 ‘정체성’을 온전히 되찾은 진정한 ‘치히로’로 거듭난 것이다. 이는 한 소녀의 모험담을 넘어, 누구나 겪게 되는 자아 찾기의 과정을 가장 아름답고도 보편적인 서사로 그려낸 위대한 성장 드라마다.

잊혀진 강의 신 하쿠, 그 기억의 구원: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피어나는 순수한 희망

치히로의 성장 서사와 함께 영화를 이끌어가는 또 다른 한 축은 바로 의문의 소년 ‘하쿠’와의 관계다. 하쿠는 유바바의 제자로서 때로는 냉정한 모습을 보이지만, 치히로가 신들의 세계에 처음 왔을 때부터 그녀를 지켜주고 도와주는 유일한 존재다. 그 역시 유바바에게 자신의 진짜 이름을 빼앗기고, 자신이 누구였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다. 두 사람은 서로의 처지에 공감하고, 위험한 상황 속에서 서로를 도우며 깊은 유대감을 쌓아간다. 치히로가 하쿠를 구하기 위해, 그리고 하쿠가 치히로를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기 위해 서로를 위하는 모습은, 탐욕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아부라야의 세계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순수한 관계다.

이들의 관계는 영화의 마지막에 이르러 가장 감동적인 순간을 맞이한다. 제니바의 집에서 돌아오는 길, 용으로 변한 하쿠의 등에 타고 하늘을 날던 치히로는 문득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 하나를 떠올린다. 그것은 그녀가 어렸을 때 강에 빠졌지만, 무언가가 자신을 뭍으로 안전하게 밀어 올려주었던 기억이다. 그리고 그녀는 깨닫는다. 그 강의 이름이 ‘코하쿠 강’이었음을. 그 순간, 하쿠는 용의 껍질을 벗고 본래의 소년 모습을 되찾는다. 그의 진짜 이름은 ‘니기하야미 코하쿠누시’, 즉 코하쿠 강의 신이었던 것이다. 인간들이 강을 메워 아파트를 지으면서, 그는 자신의 강을 잃고 갈 곳 없는 존재가 되어 유바바의 밑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여기서 ‘기억’은 잃어버린 정체성을 되찾아주는 ‘구원’의 열쇠가 된다. 치히로의 순수한 기억이 하쿠를 이름의 속박에서 해방시킨 것처럼, 하쿠 역시 치히로가 자신의 이름을 잃지 않도록 도와주었다. 이들의 관계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에 대한 아름다운 은유다.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잊혀지고 파괴된 자연(하쿠)을, 순수한 인간의 마음(치히로)이 기억하고 되살려내는 것이다. “우리 다시 만날 수 있을까?”라고 묻는 치히로에게 하쿠가 “분명히”라고 답하는 마지막 약속은, 인간과 자연이 다시 조화롭게 공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간절한 희망의 메시지처럼 들린다. 터널을 지나 다시 현실로 돌아온 치히로의 모습은, 이전과는 어딘가 달라져 있다. 그녀는 신비한 세계에서의 경험을 통해, 두려움을 이겨내고 세상을 마주할 용기를 얻은 것이다.

결론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상상력이 빚어낸 가장 눈부신 세계이자, 그의 철학이 집대성된 걸작이다. 이 영화는 화려하고 기묘한 이미지의 향연 속에서, 한 소녀의 성장을 통해 현대 사회가 잃어버리고 있는 가치들에 대해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탐욕이 만연한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어떻게 자신의 본질을 지켜낼 것인가, 파괴되는 자연과 어떻게 다시 관계를 맺을 것인가, 그리고 진정한 연대와 구원은 어디에서 오는가. 치히로의 여정은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따뜻하고도 명쾌한 대답을 제시한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아이들에게는 흥미진진한 모험을, 어른들에게는 깊이 있는 성찰을 선사하며, 왜 애니메이션이 가장 위대한 예술 형식 중 하나가 될 수 있는지를 스스로 증명해 보이는, 영원히 기억될 영화적 체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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