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와 리얼리즘, 수상으로 담아낸 시대: 영화 〈노마드랜드〉 리뷰

새로운 밀레니엄의 미국에서, 집과 고정된 주소는 더 이상 당연한 것이 아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 서부의 작은 마을과 광활한 사막을 떠도는 현대 노마드들의 삶을 다룬 〈노마드랜드〉는 불안정한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위한 우화처럼 다가온다. 중국계 미국인 감독 클로이 자오가 연출하고,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주연·프로듀싱을 맡은 이 영화는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과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영화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동시에 그것은 삶의 패러다임을 다시 묻는 한 편의 시로 읽힌다. 본 리뷰는 〈노마드랜드〉가 어떻게 현대 노마드의 생존과 자유를 섬세하게 그려냈는지, 배우와 비배우의 경계를 허물며 리얼리즘을 구현했는지, 그리고 수많은 상과 비평 속에서 어떤 의미를 남겼는지 세 부문으로 나눠 살펴본다. 영화가 촉발한 논의는 단지 영화적 성취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현재 직면한 경제적 현실과 사회적 관계의 재정립과도 맞닿아 있음을 확인하게 될 것이다.

현대 노마드의 삶과 미국의 변두리

영화는 2011년을 배경으로 시작한다. 네바다주의 소도시 엠파이어에서 석고 공장이 폐쇄되면서 소수의 마을 주민들은 삶의 근간을 잃는다. 주인공 펀은 남편의 죽음과 직장의 폐업으로 집을 처분하고, 낡은 밴을 개조해 살림을 싣는다. 더 이상 고정된 주소가 없는 그녀는 계절과 일자리를 따라 미국의 서부와 중서부를 떠돌며 일용직을 전전한다. 겨울철에는 아마존 물류센터에서 박스를 포장하고, 봄에는 비트 농장에서 구슬땀을 흘리며, 여름에는 국립공원에서 캠프 호스트로 일한다. 그녀는 길 위에서 만난 리얼리티 노마드들과 함께 식사를 나누고, 서로 생존 기술을 공유하며, 다음 목적지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한다. 영화가 묘사하는 이들의 삶은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다. 씻을 곳을 찾기 위해 공중화장실을 이용하고, 차가 고장나면 자신의 모든 자산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풍경 속에서 자유를 누리고, 정착에 얽매이지 않는 삶의 방식에서 새로운 공동체를 발견한다.

영화의 중심에는 관계의 형성과 상실, 그리고 떠남과 돌아옴이 있다. 펀은 사막 모임에서 린다, 스완키, 밥 같은 노마드들을 만나 친밀감을 쌓는다. 스완키는 암 투병 중에도 “병원에 갇혀 죽기보다는 나만의 모험을 떠나겠다”며 강한 생명력을 보여주고, 밥은 아들의 자살을 이야기하며 노마드 공동체가 ‘다음 길목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는 희망의 철학을 전한다. 펀은 이들과의 교류를 통해 자신 역시 새로운 가족을 얻는다. 그녀가 캠프장에서 만난 데이브는 그녀에게 함께 살 것을 제안하지만, 펀은 그를 사랑하면서도 ‘정착’의 의미에 회의적이다. 데이브가 손자의 탄생을 계기로 아들의 집에 머물기로 결정하는 것을 지켜본 펀은 잠시 그 가족의 따뜻한 집에 몸을 맡기지만, 결국 다시 길을 택한다. 영화는 그녀의 선택을 낭만화하거나 비판하지 않고, 개인의 내적 욕망과 외부 환경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잡으려는 인간의 본능을 담담하게 포착한다.

이 작품은 또한 미국의 숨겨진 얼굴을 보여준다. 감독은 국립공원, 유령도시, 캠핑장 등 변두리의 공간을 배경으로 황량한 아름다움을 담아내면서도, 그 이면의 경제적 현실을 잊지 않는다. 펀이 들르는 마트와 세탁소, 주유소는 사회 인프라의 최소치가 어떻게 노마드 공동체의 생존을 지탱하는지를 보여준다. 그녀가 여동생의 집에 잠시 머무르는 장면에서는 정착한 삶과 떠도는 삶의 대조가 드러난다. 여동생은 펀에게 “우리에게 네가 필요했다”고 말하지만, 펀은 자신을 ‘가족을 떠난 이상주의자’로 바라보는 친척들의 시선에 불편함을 느낀다. 이러한 갈등은 안정과 자유 중 어느 것을 선택하느냐에 대한 질문으로 확장된다. 영화는 미국 드림의 그림자가 길 위의 삶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조용히 드러내며, 관객들에게 자본주의 구조 속에서 주변화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배우와 비배우의 경계: 연출과 리얼리즘

〈노마드랜드〉의 가장 큰 미덕은 허구와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방식이다. 영화는 제시카 브루더의 논픽션 도서를 바탕으로 하지만,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장면은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중간 어디쯤에 위치한다.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주인공 펀을 연기하는 동시에, 실제 노마드 커뮤니티에 스며들어 그들의 삶을 기록했다. 클로이 자오는 이전 작품 〈더 라이더〉에서 보여준 것처럼 비전문 배우를 등장시켜 현장의 자연스러운 에너지와 생생한 풍경을 포착하는 데 탁월하다. 린다 메이, 스완키, 밥 웰스 등 영화에 등장하는 다수의 인물은 실제 노마드로, 그들 자신의 이름과 이야기를 그대로 가지고 출연한다. 이러한 캐스팅은 영화의 진정성을 높이는 동시에, 관객이 이야기 속으로 더욱 깊이 몰입하도록 돕는다.

촬영은 2018년 가을 네 달 동안 미국 서부 여러 지역에서 진행되었으며, 감독과 배우, 스태프는 모두 밴에서 생활하며 노마드의 삶을 체험했다. 작은 규모의 제작진은 도시와 자연을 가로지르며 자연광을 활용한 촬영을 했다. 자오는 “있는 그대로의 빛과 풍경을 담기 위해 정확한 시간과 장소를 기다렸다”고 말한다. 오랜 시간과 이동을 통해 얻은 이 필름의 시간감각은 영화 속에서 중요하게 작용한다. 카메라는 광활한 사막을 가로지르는 펀을 멀리서 따라가다가, 인물들의 얼굴을 가까이 잡아 그들의 감정과 내면을 비춘다. 이러한 촬영 방식은 관객에게 길 위에 있는 듯한 경험을 제공하며, 때로는 펀의 심장박동과 대지의 바람 소리만이 들리는 적막 속에 관객을 몰아넣는다.

편집과 음악 역시 영화의 리얼리즘을 살리는 요소다. 편집은 펀의 여행을 단순히 사건의 연속으로 나열하는 대신, 다양한 사람들과 풍경을 전전하며 시간을 느긋하게 흘려보낸다. 관객은 그녀가 길 위에서 마주하는 짧은 대화와 사소한 디테일을 통해 삶의 리듬을 체험한다. 사운드트랙은 현대 클래식 작곡가 루도비코 에이나우디의 연주곡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간결한 피아노 선율과 현악기의 잔잔한 울림이 사막의 고요함과 여행자의 고독을 감싸준다. 때로는 윌리 넬슨의 경쾌한 노래나 컨트리 음악이 흘러나와 미국 서부의 정취를 더한다.

영화 속 상징들도 주목할 만하다. 펀이 여행 중 들렀던 유령 도시 엠파이어는 붕괴된 산업과 ‘집’의 상실을 상징하고, 사막 한복판의 커뮤니티는 새로운 가족과 지지를 의미한다. 밴은 이동 수단이자 집이며, 펀의 과거와 현재, 미래가 모두 응축된 공간이다. 영화는 이러한 상징을 설명적으로 다루지 않고, 이미지와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자오의 연출은 과장된 대사나 극적인 사건을 지양하고, 인물들이 스스로를 표현하도록 시간을 준다. 관객은 인물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장면을 통해 미국의 다양한 삶의 단면을 엿본다. 이 과정에서 배우와 비배우의 경계는 의미를 잃고, 영화는 우리와 가까운 이웃의 삶을 담은 기록으로 변모한다.

비평과 수상: 시대를 반영한 걸작

〈노마드랜드〉는 2020년 9월 베니스 국제영화제에서 세계 최초로 공개되었다. 당시 팬데믹으로 인해 많은 영화제가 취소되거나 온라인으로 전환된 상황에서, 이 작품은 현장에서 관객과 평론가의 큰 환호를 받으며 최고상인 황금사자를 수상했다. 이어 같은 달 토론토 국제영화제에서는 관객상인 ‘피플스 초이스 어워드’를 거머쥐며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한 작품이 두 영화제에서 동시에 최고상을 받은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코로나19로 극장 개봉이 어려웠던 상황에서 영화는 2021년 1월 한정된 IMAX 상영을 시작으로 2월에 극장과 드라이브인 극장에서 동시 개봉했으며, 같은 날 스트리밍 서비스 훌루를 통해 공개됐다. 그 결과 3천7백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며 아트하우스 영화로서는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평단의 반응은 거의 만장일치에 가까웠다. 리뷰 집계 사이트의 평점은 90% 이상이 긍정적이었고, 평균 점수도 8점 후반을 기록했다. 비평가들은 “경제적 낙오자에 대한 시적 초상화” “조용한 혁명” “관객을 새로운 나라로 이끄는 영화” 등 찬사를 쏟아냈다. 특히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연기는 “내면의 상처와 굳건함을 동시에 보여주는 걸작”으로 평가되었다. 자오의 연출 역시 ‘놀라울 정도로 자유롭고 세심하다’는 호평을 받았다. 그러나 모든 평가가 긍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일부 평론가는 영화가 가난과 불안정한 노동 현실을 미화한다고 비판하며 “108분짜리 빈곤 관광”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또 다른 이들은 미국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다루면서도 거대 기업 아마존의 노동 환경을 비판 없이 묘사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표했다. 이러한 의견은 영화가 던진 논쟁의 여지가 얼마나 넓은지를 보여준다.

수상 실적 측면에서 이 영화는 역대급 기록을 남겼다.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작품상(드라마)과 감독상을 수상하며, 클로이 자오는 아시아계 여성 최초로 골든글로브 감독상을 받았다. 독립영화 스피릿 어워즈와 크리틱스 초이스 어워즈에서도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을 수상하며 연말 시상 시즌의 강자로 떠올랐다. 결정적으로, 2021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6개 부문 후보에 올라 작품상, 감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자오는 아카데미 역사상 두 번째로 감독상을 받은 여성이며, 비백인 여성으로서는 최초였다. 이러한 성과는 할리우드에서 여성과 소수 인종 감독이 차지하는 위치를 재조명하는 계기가 되었다. 맥도먼드는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세 번째 오스카를 거머쥐었고, 수상소감에서 “늑대의 울음”을 올려 영화의 사운드 믹서를 추모했다. 영국 아카데미, 미국배우조합, 미국영화연구소 등 거의 모든 주요 비평가 협회와 시상식에서 이 작품이 상위에 이름을 올렸다.

흥미롭게도 영화의 성공은 중국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클로이 자오가 2013년 인터뷰에서 중국을 “거짓말이 가득한 나라”라고 언급한 사실이 새삼 주목받으면서, 중국 당국은 영화의 개봉을 취소하고 오스카 시상식 중계에서 영화와 감독의 이름을 검열했다. 이러한 사건은 예술과 정치가 어떻게 얽히는지, 그리고 글로벌 영화 시장에서 검열이 작품의 영향력을 제한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마드랜드〉는 전 세계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며, 수많은 영화 목록에서 21세기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 꼽혔다. 타임아웃은 영화가 “리얼리즘과 초월적 순간, 가벼운 급진주의를 결합했다”고 평했고, 다른 매체들은 “2020년대 최고의 드라마 중 하나” “팬데믹 시대의 정서적 지침서”라고 평가했다.


〈노마드랜드〉의 수상과 비평적 성공은 단순히 한 편의 영화가 잘 만들어졌기 때문만이 아니다. 영화는 경제 불평등, 사회적 고립, 공동체의 의미와 같은 현대인의 고민을 섬세하게 포착하며, 관객에게 공감과 성찰의 계기를 제공한다. 또한 할리우드에서 소외된 목소리를 전면에 내세워, 기존 영화 산업의 틀을 흔드는 역할을 했다. 이러한 점에서 〈노마드랜드〉는 영화사적 사건이자,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로 남게 될 것이다.

현대 노마드라는 주제는 우리에게 낯설면서도 친숙하다. 고정된 주소와 안정된 직장이 사라져가는 시대에,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의 떠돌이로 살아가고 있다. 〈노마드랜드〉는 그런 현실을 정제된 이미지와 감정으로 담아냄으로써, 관객에게 “길 위에서도 삶의 존엄성과 연대는 가능하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클로이 자오와 프랜시스 맥도먼드는 현실과 허구의 경계를 허물고, 진정성 있는 인간의 이야기를 스크린에 담아냈다. 수많은 상과 비평의 찬사가 이를 증명하며, 영화는 앞으로도 오래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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