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배리 젠킨스 감독의 영화 <문라이트>는 미국 영화사에 잊지 못할 흔적을 남겼다. 타렐 앨빈 맥크래니의 희곡 <In Moonlight Black Boys Look Blue>를 바탕으로 한 이 작품은 한 흑인 소년의 성장 이야기를 통해 정체성, 사랑, 가족, 폭력, 감성을 섬세하게 다룬다. 마이애미의 거친 환경에서 자라는 샤이론이라는 인물을 세 단계로 나누어 어린 시절, 청소년기, 성인기 각각 다른 배우가 연기하며, 그의 내면을 다층적으로 그린다. <문라이트>는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남우조연상(마허샬라 알리), 각색상을 수상하면서 큰 화제를 모았다. 본 리뷰에서는 이 작품을 세 가지 측면, 즉 ‘정체성과 성장의 여정’, ‘배리 젠킨스의 연출과 시간의 구조’, ‘음악, 빛과 색채의 시적 아름다움’으로 나누어 살펴본다. 이번 리뷰에서는 작품이 어떻게 개인적인 이야기를 통해 보편적인 감동을 이끌어내는지 분석한다.
정체성과 성장의 여정
<문라이트>의 중심은 주인공 샤이론이 자신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영화는 ‘Little’, ‘Chiron’, ‘Black’이라는 세 장으로 구성되어 각각 그의 어린 시절, 청소년기, 성인기를 다룬다. 1부 ‘Little’에서 샤이론(알렉스 히버트)은 친구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마약 중독에 빠진 어머니 폴라(나오미 해리스)의 부재 속에서 외로이 자란다. 그는 어느 날 자신의 집에서 도망쳐 빈집에 숨어 있다가 지역 마약상 후안(마허샬라 알리)과 연인 테레사(자넬 모네이)를 만나게 된다. 후안은 샤이론에게 수영을 가르치고, 자신이 누구인지 정답을 찾아야 한다며 인생의 멘토가 된다. 이 과정에서 샤이론은 처음으로 자신을 받아들여주는 어른을 만난다. 후안은 마약 판매업자이지만 아이에게 따뜻함을 제공하는 모순적 존재로, 영화는 그를 단순한 악당이 아닌 복합적인 인물로 그린다.
2부 ‘Chiron’에서는 샤이론(애쉬턴 샌더스)이 사춘기에 접어들며 성 정체성과 감정에 혼란을 겪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는 학교에서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고, 어머니는 약물 중독으로 점점 통제를 잃어간다. 샤이론은 유일한 친구 케빈(자렐 제롬)과의 관계 속에서 처음으로 친밀감과 성적 정체성을 경험한다. 두 사람이 해변에서 나누는 키스는 영화의 중요한 장면으로, 이들의 갈등과 사랑, 그리고 이후 벌어질 배신과 미안함을 암시한다. 학교에서 벌어진 폭행 사건은 샤이론의 분노와 억압된 감정이 폭발하는 계기가 된다. 그는 자신을 괴롭히던 학생을 때려 눕히고 결국 감호 시설에 보내진다. 이러한 경험은 그의 정체성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치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껍질을 두르게 한다.
마지막 3부 ‘Black’에서 성인이 된 샤이론(트레번트 로즈)은 애틀랜타에서 마약을 판매하며 강인한 외형을 갖춘 채 살아간다. 그는 후안의 삶을 모방하듯 마약 사업을 운영하고, ‘Black’이라는 별명을 사용한다. 그러나 내부의 불안과 공허함은 여전히 남아 있다. 어머니는 약물 중독 치료를 받으며, 샤이론에게 과거의 상처를 용서해달라고 호소한다. 샤이론은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질문을 계속한다. 어느 날 그는 오랜 친구 케빈(성인 역 앙드레 홀랜드)의 전화를 받고, 케빈이 마이애미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두 사람은 오랜만에 다시 만나 서로의 삶을 이야기하고, 그 과정에서 샤이론은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낸다. 마지막 장면에서 그는 케빈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어린 시절의 ‘Little’로 돌아간 듯한 평온함을 느낀다. 이는 사회적 역할과 가면을 벗고 진정한 자신을 찾는 순간이다.
영화는 샤이론의 여정을 통해 정체성의 형성과 자기 수용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흑인 남성의 동성애 경험을 중심으로, 사회적 편견과 가난, 중독, 범죄가 어떻게 개인의 삶을 형성하는지 보여준다. 그러나 그 안에는 다른 삶의 조건을 가진 관객도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 감정이 존재한다. 외로움, 사랑, 가족의 복잡함, 용서와 화해 등은 누구에게나 익숙한 테마다. 영화는 샤이론의 눈을 통해 우리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배리 젠킨스의 연출과 시간의 구조
배리 젠킨스 감독의 연출은 섬세하고 시적이다. 그는 샤이론의 삶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각각을 독립된 단편처럼 구성하면서도, 전체적으로 유기적인 내러티브를 만든다. 세 시대의 샤이론을 다른 배우가 연기하지만, 젠킨스는 카메라의 시선과 움직임을 통해 이들 사이의 연속성을 유지한다. 어린 샤이론의 불안한 눈빛과 청소년기의 긴장된 몸짓, 성인이 된 후 굳건해 보이지만 속이 빈 듯한 표정은 서로 다른 배우에게서 일관되게 이어진다. 이는 감독과 배우들의 세밀한 협업의 결과로, 샤이론이라는 인물의 본질을 관객이 놓치지 않게 해준다.
연출에서 눈에 띄는 또 하나의 특징은 시간의 흐름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방식이다. 젠킨스와 촬영감독 제임스 랙스턴은 다양한 카메라 렌즈와 색온도를 활용해 각 장의 분위기를 구분한다. ‘Little’에서는 따뜻하고 자연광이 강조되어 어린 샤이론의 순수함과 외부 세계의 잔혹함이 대비된다. ‘Chiron’에서는 푸른 톤이 더해져 사춘기의 불안과 혼란을 표현하고, ‘Black’에서는 어두운 그림자와 인공조명이 강한 대조를 이루어 성인 샤이론의 내면과 외양의 거리를 보여준다. 이러한 시각적 차이는 이야기를 따라가면서도 각 시간대의 감정적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전달한다.
젠킨스는 정적인 장면과 긴 호흡을 통해 인물의 내면에 집중한다. 대화가 많지 않음에도, 카메라는 얼굴과 눈빛, 손짓에 가까이 다가가 감정을 읽게 한다. 후안이 바닷가에서 샤이론에게 수영을 가르치는 장면에서, 카메라는 수면에 수평으로 놓여 두 사람의 얼굴과 물의 움직임을 함께 비춘다. 이 장면은 시적인 아름다움과 동시에 신뢰와 가르침의 순간을 담고 있다. 또한 케빈과 성인 샤이론이 카페에서 만나 대화하는 장면에서, 젠킨스는 두 사람의 얼굴을 번갈아 보여주며 미묘한 표정과 침묵을 포착한다. 음악과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이 이 침묵 속에서 전달된다.
영화의 편집은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지 않고 각 장을 순차적으로 나열하지만, 각 장의 끝과 다음 장의 시작은 시각적·정서적 모티프를 통해 연결된다. 1부 마지막에서 샤이론이 후안의 품에 안기는 장면 다음, 2부에서는 후안의 부재와 어머니의 혼란이 이어지며, 관객은 시간의 공백을 스스로 채워넣게 된다. 이는 젠킨스가 관객에게 생각할 여지를 주는 연출 방식이다.
또한 연출은 지역성과 보편성을 균형 있게 다룬다. 영화는 마이애미의 리버티 시티를 배경으로 삼지만, 특정 지역의 낭만화나 비극화를 피한다. 대신 인물들의 경험과 감정에 초점을 맞춰, 관객이 자신의 경험과 연결할 수 있도록 한다. 이는 젠킨스가 흑인 공동체 내부의 다양성과 층위를 존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동성애, 마약, 가정폭력 같은 사회적 문제도 특정 집단의 고유한 문제로 국한하지 않고, 인간 보편의 고통과 극복 과정으로 제시한다.
음악, 빛과 색채의 시적 아름다움
<문라이트>의 분위기를 완성하는 데 있어 음악과 빛, 색채는 필수적이다. 음악은 니콜라스 브리텔이 맡아, 클래식과 힙합, 남부 랩을 섞은 독창적인 사운드트랙을 만들었다. 특히 ‘Chiron’s Theme’는 스트링과 피아노가 반복적인 패턴을 이루며, 샤이론의 불안과 내면의 울림을 표현한다. 브리텔은 ‘chopped and screwed’ 기법을 사용해 클래식 연주를 느리게 변조하고 음높이를 낮춰, 시공간의 왜곡을 음악적으로 나타낸다. 이는 샤이론의 머릿속에서 시간이 늘어지거나 감정이 왜곡되는 느낌을 관객이 함께 느끼도록 한다. 또한 케빈이 차에서 라디오로 들려주는 ‘Every N****r Is a Star’ 같은 힙합 곡들은 당시 마이애미의 음악 문화를 배경에 깔아, 영화의 시간적·공간적 맥락을 제공한다.
빛과 색채는 영화의 제목 ‘문라이트’처럼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밤과 바닷가, 가로등 아래, 달빛이 비추는 방 등 다양한 광원이 등장하며, 이는 샤이론의 감정 상태를 상징적으로 표현한다. 후안이 바다에서 샤이론을 가르치던 장면에서 수면 위에 반사되는 빛은 희망과 치유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청소년 시절 케빈과의 해변 장면에서는 달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부드럽게 비추어, 그들의 감정이 조용히 터져 나오는 순간을 강조한다. 성인이 된 샤이론이 밤에 운전하며 거리를 지나갈 때, 차창 밖의 네온사인과 거리의 조명이 그의 외로움과 도시의 거친 현실을 동시에 드러낸다.
색채 연출은 각 장의 분위기를 구분하는 데 활용된다. 어린 시절은 따뜻한 황색과 갈색 톤이 많아, 후안과 테레사와 함께 있는 순간의 안전함을 나타낸다. 사춘기 시절은 푸른색과 녹색이 많아 불안과 혼란을 강조하며, 성인기는 어두운 청색과 검정이 주조를 이루어 샤이론이 자신을 감추고 강인한 모습을 연출하려는 모습을 반영한다. 그러나 마지막 장면에서 케빈과 만난 식당에서는 따뜻한 녹색과 황색 빛이 감돌아, 두 사람이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비춘다.
음향 디자인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영화는 종종 대사를 줄이고 환경음을 강조한다. 파도 소리, 자동차 엔진,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 등은 등장인물의 감정을 반영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샤이론이 케빈의 어깨에 기대어 밖의 파도 소리를 들을 때, 관객은 둘 사이의 조용한 화해와 평온을 느낄 수 있다.
<문라이트>의 시적 아름다움은 이러한 음악, 빛, 색채, 음향이 결합해 만들어낸 것이다. 영화는 현실의 거칠음과 함께 환상적인 감각을 불러일으키며, 관객이 인물의 내부 세계를 섬세하게 느낄 수 있도록 한다. 이는 단순히 드라마를 보는 것을 넘어, 시와 음악을 감상하는 경험과 비슷하다.
결론
<문라이트>는 한 소년의 성장과 정체성 탐구를 통해 현대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조용하면서도 강렬하게 그려낸다. 배리 젠킨스의 감각적인 연출과 섬세한 시각적, 음악적 표현은 영화가 단순한 스토리텔링을 넘어 예술적 체험이 되도록 한다. 샤이론의 이야기에는 흑인성과 동성애, 빈곤과 폭력이라는 구체적 맥락이 있지만, 동시에 사랑과 용기, 자기 수용이라는 보편적 메시지가 담겨 있어 전 세계 관객의 마음을 울린다. <문라이트>는 빛과 그림자, 음악과 침묵을 통해 인간 존재의 복잡성을 탐구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