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와 연출, 음악: 영화 '버드맨' 리뷰

2014년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의 <버드맨>은 영화와 연극, 현실과 환상을 넘나드는 독특한 스타일과 주제로 전 세계 영화인들의 주목을 받았다. 예전 슈퍼히어로 영화 ‘버드맨’으로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제는 잊힌 배우 리건 톰슨(마이클 키턴)이 브로드웨이에서 자신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연극을 기획하고 주연을 맡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그는 자신의 명성과 재능을 증명하려 애쓰는 한편, 머릿속에서 버드맨 캐릭터의 목소리가 끊임없이 자신을 조롱하고 유혹하며 정신적 균형을 흔든다. 영화는 인간의 자아와 욕망, 예술과 대중성,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탐구한다. 유머와 강렬한 드럼 비트, 그리고 한 테이크로 촬영한 듯한 카메라 워크가 돋보이며, 이는 87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촬영상 등 4관왕을 차지했다. 이번 리뷰에서는 작품을 ‘예술과 현실, 자아의 충돌’, ‘이냐리투의 연출과 원테이크의 미학’, ‘음악, 사운드, 뉴욕의 숨결’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분석한다.

예술과 현실, 자아의 충돌

영화의 주인공 리건 톰슨은 1990년대에 ‘버드맨’이라는 슈퍼히어로로 대중적 인기를 얻었지만, 이후 커리어가 하락하며 재기를 꿈꾼다. 그는 브로드웨이에서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 <사랑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무대화하며, 자신이 배우이자 연출가, 각색자로서 인정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연극 제작 과정은 쉽지 않다. 투자금 부족, 배우들의 문제, 비평가들의 냉소, 딸과의 갈등 등 여러 장애물이 그를 괴롭힌다. 특히 그는 자신의 안에 있는 ‘버드맨’ 목소리와 끊임없이 대화한다. 이 목소리는 그의 자존심과 동시에 불안을 상징하며, 그에게 다시 슈퍼히어로 영화에 복귀해 돈과 명성을 얻으라고 유혹한다. 리건은 예술적 자아와 상업적 성공 사이의 갈등 속에서 점점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한다.

영화는 리건의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며, 배우라는 직업의 불안정성과 압박을 보여준다. 그는 무대 위에서 한 대사를 놓치거나 소품이 망가지는 순간 연극이 망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린다. 리건의 딸 샘(엠마 스톤)은 약물 중독 치료에서 돌아와 아버지와 함께 일하지만, 그는 그녀와 깊은 교류를 하지 못한다. 샘은 소셜미디어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아버지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리건은 샘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고전적인 예술관을 고수한다. 이 둘의 관계는 세대 간 가치관 차이를 상징한다. 또한 리건의 전 부인 실비아(에이미 라이언)는 그에게 과거의 실수와 책임을 상기시키며,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지키도록 조언한다.

동료 배우들과의 갈등도 영화의 주요 요소다. 리건은 연습 도중 파트너가 다쳐 대신 투입된 유명 연극 배우 마이크 신클레어(에드워드 노튼)를 맞이한다. 마이크는 무대에서 즉흥을 즐기고,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괴짜로, 리건의 연극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지만, 그의 자존심을 상하게 만들기도 한다. 마이크는 리건을 무시하고 그의 연기에 대해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리건의 숨겨진 갈망을 자극하며, 그를 경쟁자로서 각성시킨다. 니콜(나오미 왓츠)과 로라(안드레아 라이즈버러) 역시 자신들의 꿈과 불안을 안고 무대에 오르며, 각각의 인간적인 약점을 드러낸다. 이들은 리건의 자아의 미러 역할을 하며, 예술가들이 마주한 위선과 정체성의 갈등을 보여준다.

영화는 리건이 자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결국 뉴욕의 거리를 버드맨으로 날아다니는 환각을 경험하거나, 극장 지붕에서 뛰어내려 비행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러한 환상은 그가 현실을 어떻게 지각하는지를 보여주며, 관객이 그의 정신 상태를 직접 체험하게 한다. 영화의 마지막, 리건이 무대 위에서 자신의 머리에 실제 총을 쏘며 ‘리얼리즘’을 추구하는 장면은 예술과 삶의 경계가 완전히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는 무대에서 자신의 삶을 희생하며, 극적 현실과 현실적 비극을 동시에 만들어낸다. 이 후 리건은 병원에서 눈을 뜨고 딸 샘과 화해하며, 창밖으로 날아올라 하늘을 바라본다. 끝내 그는 자신이 진정한 의미의 자유와 승화를 얻었는지, 아니면 여전히 환상 속을 떠도는지 모호한 결말을 남긴다.

이냐리투의 연출과 원테이크의 미학

<버드맨>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영화 전체가 하나의 긴 테이크로 찍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촬영감독 엠마누엘 루베츠키는 스테디캠과 핸드헬드, 무인 슬라이더 등을 활용해 극장 내부의 복잡한 동선을 따라가며, 등장인물들의 움직임과 감정을 실시간으로 포착한다. 루베츠키는 기존의 컷 편집을 최소화하고, 카메라를 자유롭게 이동시켜 관객을 공연장 안팎의 미로 같은 공간으로 안내한다. 카메라는 복도에서 무대 뒤로, 배우의 분장실에서 지붕 위로, 거리에서 술집으로 끊김 없이 이어지고, 이러한 긴 호흡은 연극과 영화의 경계를 허문다. 관객은 무대의 긴장과 백스테이지의 혼란을 연속적으로 체험하며, 리건의 심리상태에 깊이 몰입한다.

이냐리투는 시간을 압축하거나 확장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진행한다. 영화는 실제로 며칠 동안 진행되지만, 카메라의 끊김 없는 움직임과 자연스러운 변화를 통해 관객은 시간이 흘러가는지 모른 채 이야기 속에 빠져든다. 또한 빛과 그림자를 이용해 공간과 분위기를 변화시키며, 마치 연극 세트처럼 무대와 현실이 연결되는 느낌을 준다. 카메라가 한 번도 멈추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이 연출은 무대 위 연극과 현실의 혼합을 상징하며, 리건이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는 상태를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배우들의 연기도 이러한 연출을 가능하게 한 큰 요소다. 마이클 키턴은 한때 슈퍼히어로 역할로 유명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겪은 자신의 현실과 리건의 설정이 유사해, 메타적 면모를 더한다. 그는 리건의 불안과 두려움, 자존심과 열망을 섬세하게 표현하며, 동시에 버드맨 캐릭터의 목소리를 내재화해 내부 대화 장면을 설득력 있게 소화한다. 그의 눈빛과 몸짓, 과장된 연기와 순간적인 폭발은 캐릭터의 복잡성을 드러낸다. 에드워드 노튼은 예술에 진지하게 몰입하지만 자기 중심적인 배우 마이크 역을 통해 연극계의 엘리트와 그들의 위선을 풍자한다. 노튼과 키턴의 신경전을 담은 리허설 장면은 영화의 긴장과 유머를 잘 보여주며, 두 배우의 연기 합이 돋보인다.

엠마 스톤은 리건의 딸 샘을 연기하며, 과거 아버지의 부재로 인해 상처받았지만 속으로는 그를 사랑하는 딸의 복잡한 심리를 잘 표현했다. 그녀는 아버지에게 “당신은 중요하지 않아요, 아무도 당신을 신경 쓰지 않아요”라고 일침을 가하며, 그가 과거의 영광에 집착하는 동안 현실을 놓치고 있음을 지적한다. 나오미 왓츠, 안드레아 라이즈버러, 에이미 라이언 등 조연 배우들도 각자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려 극의 완성도를 높인다.

각본은 이냐리투와 함께 니콜라스 지아코보네, 알렉산드로 딘엘라리스 주니어, 아르만도 보가 공동으로 썼다. 대사는 촌철살인의 유머와 은유로 가득하며, 연극과 영화, 현실과 SNS 시대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예술적 순수성을 주장하는 비평가와, 슈퍼히어로 영화만이 흥행을 보장한다고 믿는 대중문화 사이의 균열도 이야기 속에서 드러난다. 리건은 브로드웨이에서 진지한 배우로 인정받기 위해 분투하지만, 그의 딸은 “어차피 사람들은 버드맨만 기억할 뿐”이라고 말한다. 이런 대사들은 예술과 상업성, 명성과 존엄 사이의 긴장을 강조한다.

음악, 사운드, 뉴욕의 숨결

<버드맨>에서 음악은 전통적인 영화음악과 다르게 주로 드럼 솔로로 구성되어 있다.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스가 즉흥적으로 연주한 이 드럼 비트는 영화 내내 긴장감과 리듬을 형성한다. 드럼은 리건의 심장박동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그의 불안과 흥분을 고조시키기도 한다. 때때로 드러머가 화면에 직접 등장해 엘리베이터 앞이나 거리 한복판에서 연주하는 장면은 영화와 현실을 더욱 혼란스럽게 한다. 이러한 설정은 음악이 단순한 배경음악이 아니라 서사의 일부임을 암시하며, 브로드웨이의 숨가쁜 움직임과 리건의 정신 상태를 한껏 강조한다. 드럼 비트와 함께 모차르트, 마흐랄, 라벨 등의 클래식 음악도 삽입되어, 전통과 현대, 고전과 혁신의 대비를 만들어낸다.

영화는 또한 뉴욕의 소리와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무대 뒤의 나무 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 배우들의 발걸음, 환풍기의 윙윙거리는 소리, 거리의 자동차 경적과 지하철 소리, 극장 앞에서 웨이터가 주문을 외치는 소리 등 일상의 소리가 교묘하게 믹스되어 리얼리티를 강화한다. 특히 리건이 속옷 차림으로 타임스퀘어를 걸어가는 장면에서, 도시의 혼란스러운 소음과 구경꾼의 웃음, 휴대폰 카메라 셔터 소리가 어우러져 그의 굴욕감과 무기력을 적나라하게 전달한다. 이러한 소리들은 뉴욕이라는 도시의 숨결을 느끼게 하고, 영화 속 공간을 생생하게 만든다.

색채와 조명, 의상 역시 영화의 미학을 구성한다. 브로드웨이 극장의 내부는 어두운 목재와 붉은 벨벳, 금빛 장식으로 클래식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리허설 중에는 조명이 밝고, 공연이 다가올수록 그림자가 짙어지며 긴장감이 고조된다. 리건이 환각 속에서 버드맨으로 변신할 때, 카메라는 강렬한 블루와 네온 그린 조명을 사용해 초현실적인 분위기를 강조한다. 마이크의 캐릭터는 항상 검은 의상과 패도라 모자를 쓰고 등장해 스스로를 스포트라이트로 만드는 반면, 리건은 회색과 갈색 등 무채색을 입어 무대에서 사라질 듯한 인상을 준다.

영화는 또한 현대 사회의 미디어 환경을 비판적으로 비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유튜브 등 SNS가 사람들의 명성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 뉴스가 가십과 스캔들에 몰두하는 풍조, 평론가의 권력과 대중의 관심이 예술가에게 어떤 부담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리건이 거리에서 속옷 차림으로 뛰어다니는 영상이 인터넷에 퍼지자 그의 연극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는 설정은, 현대 사회에서 예술적 성취보다 스캔들이 주목받는 현실을 풍자한다. 이는 인스타그램의 ‘팔로워’ 숫자가 연극 비평보다 더 중요한 지표가 되는 시대를 묘사한다.

<버드맨>은 알레한드로 이냐리투가 영화와 연극, 현실과 환상을 거침없이 넘나들며 현대 예술의 본질과 가치에 대해 도발적으로 질문한 작품이다. 드럼과 도시의 소리, 원테이크의 숨가쁜 움직임은 관객을 무대 뒤의 긴장감 속으로 끌어들이고, 배우들은 메타적 설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와 연기를 반추한다. 뉴욕의 거리는 예술과 상업, 현실과 가상 세계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그려지며, 리건의 분열된 정신이 그 속에서 반향을 일으킨다.

결론

<버드맨>은 영화와 연극, 슈퍼히어로 문화와 순수 예술, 자기애와 자기혐오 사이의 긴장을 탐구한 혁신적 작품이다. 이냐리투의 실험적 연출, 루베츠키의 원테이크 촬영, 산체스의 드럼 음악, 그리고 마이클 키턴을 비롯한 배우들의 깊은 메타적 연기가 결합해 강렬한 시청각 경험을 제공한다. 영화는 한때 슈퍼히어로였던 배우가 명예를 회복하려는 이야기를 통해, 우리 모두가 인정받고 싶은 욕망과 두려움, 예술과 현실 사이의 균형을 어떻게 잡아야 하는지 질문한다. <버드맨>은 예술가의 불안과 야망을 정직하게 드러내면서도, 냉소적인 유머와 초현실적 상상력을 통해 현대 문화의 위선과 모순을 비춘다. 이러한 이유로 <버드맨>은 현대 영화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며, 예술과 삶의 경계를 탐험하는 이들에게 잊히지 않을 작품으로 남는다.

다음 이전